1. 개요[편집]
| 블로흐 정리 Bloch's theorem | |
|---|---|
| 발표 | 펠릭스 블로흐 (1928, 박사학위 논문) |
| 전제 | 퍼텐셜의 이산 병진 대칭 V(r+R) = V(r) |
| 결론 | ψnk(r) = eik·r unk(r), u는 격자 주기함수 |
| 얻는 것 | 무한 문제 → 단위세포 하나 × 파동벡터 k |
| 이식 대상 | 광자·포논·탄성파·시간 주기계(플로케) |
블로흐 정리(Bloch’s theorem)는 퍼텐셜이 격자 벡터 만큼의 병진에 대해 불변인 계, 즉 인 계에서 슈뢰딩거 방정식의 고유함수를 평면파 × 격자 주기함수의 곱으로 항상 쓸 수 있다는 정리다.
동등하게 — 한 칸 옮기면 위상만 바뀐다는 뜻이다.
이 한 줄이 고체물리와 계산 재료과학 전체를 떠받친다. 개 원자가 든 결정을 통째로 풀 방법은 없지만, 블로흐 정리는 그 무한 문제를 단위세포 하나짜리 문제를 파동벡터 로 색인한 가족으로 바꿔 준다. 각 마다 독립된 작은 고유값 문제 하나. 이 문서는 정리 자체와 그 귀결(결정운동량·브릴루앙 영역·밴드갭의 기원)을 다루고, 실제 계산 방법론은 밴드 구조 계산, 전자기파로의 이식은 광결정으로 넘긴다.
2. 증명 얼개 — 대칭성이 전부다[편집]
증명의 핵심은 양자역학이 아니라 군론적 사실이다. 격자 벡터만큼 평행이동시키는 연산자 을 정의하자.
세 단계면 끝난다.
1. 교환한다. 운동에너지는 병진 불변이고 퍼텐셜도 가정에 의해 병진 불변이므로 . 또한 병진끼리도 서로 교환한다(, 아벨 군). 서로 교환하는 연산자들은 동시 고유함수를 갖는다.
2. 고유값의 형태를 좁힌다. 라 두면 군 구조에서 곧바로 . 이 함수방정식의 해는 지수함수뿐이다. 게다가 은 유니터리(노름 보존)이므로 . 따라서
인 실수 벡터 가 존재한다. 여기서 가 실수라는 것이 결정적이다 — 만약 이면 파동함수가 결정 한쪽 끝에서 지수적으로 폭발한다.
3. 마무리. 로 정의하면 . 주기함수다. 증명 끝.
강조할 점 — 증명 어디에도 퍼텐셜의 모양은 들어오지 않았다. 약하든 강하든, 매끄럽든 델타 빗이든 상관없다. 필요한 것은 오직 이산 병진 대칭 하나다. 그래서 이 정리는 슈뢰딩거 방정식 전용이 아니고, 나중에 보듯 맥스웰 방정식과 탄성파 방정식으로 그대로 복사된다.
2.1. k는 얼마나 많은가[편집]
무한 결정을 그대로 두면 가 연속이라 상태를 세기가 곤란하다. 표준 처방은 주기경계조건의 결정판인 보른-폰 카르만 조건이다. 각 방향으로 개 세포 뒤에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고 두면 이 요구되고,
즉 브릴루앙 영역 안에 정확히 개(= 세포 개수)의 허용 가 산다. 밴드 하나당 상태 수가 세포 수와 같다는, 금속·절연체 판정의 근거가 여기서 나온다.1
3. 브릴루앙 영역과 k의 불정성[편집]
역격자 벡터 는 로 정의되고, 임의의 역격자 벡터 는 정의상 을 만족한다. 그러면 위상 인자 은 와 를 구별하지 못한다.
즉 는 역격자를 법으로 하는 잉여류일 뿐이다. 대표원을 하나 골라야 하는데, 원점에서 가장 가까운 것들을 모은 역공간의 위그너-자이츠 세포가 **제1 브릴루앙 영역**이다. 모든 물리적으로 구별되는 상태가 이 안에 다 들어간다(환원 영역 표현). 밴드를 접지 않고 를 계속 늘려 그리는 확장 영역 표현, 모든 밴드를 모든 영역에 반복해 그리는 반복 영역 표현도 같은 정보의 다른 포장이다.
이 불정성 때문에 밴드 지수 이 필요하다. 같은 에 대응하는 해가 무한히 많고, 이들을 에너지 순으로 번호 매긴 것이 밴드다. 결국 스펙트럼은 라는 함수족이 되며, 이걸 브릴루앙 영역의 고대칭점을 잇는 경로를 따라 그린 것이 우리가 아는 밴드 다이어그램이다.
4. 결정운동량 ħk의 정체[편집]
블로흐 상태에서 를 결정운동량이라 부르는데, 이름과 달리 진짜 운동량이 아니다.
- 는 의 고유함수가 아니다. 가 상수인 자유전자일 때만 그렇다. 실제로 로, 둘째 항이 남는다.
- 는 만큼의 불정성을 가지므로 애초에 값이 하나로 정해지지도 않는다.
- 그럼에도 보존량 노릇을 한다. 병진 대칭이 만든 보존량이므로, 결정 안 산란·흡수·방출에서 는 를 법으로 보존된다. 격자가 를 통째로 받아가는 과정이 움클랍(Umklapp) 산란이고, 열전도의 유한한 저항이 여기서 나온다.
준고전 동역학도 여기서 나온다. 밴드 전자의 군속도와 유효질량은
이고, 외력에 대해 가 성립한다. 여기서 는 외부 힘만이고 격자의 힘은 이미 안에 흡수돼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유효질량이 음수가 되는 밴드 꼭대기에서 정공(hole)이라는 개념이 튀어나오고, 반도체 소자 이론이 통째로 이 위에 세워져 있다.2
5. 밴드갭은 어디서 오는가[편집]
블로흐 정리 자체는 갭의 존재를 말하지 않는다. 갭은 퍼텐셜의 푸리에 성분이 만든다.
가 주기함수이므로 푸리에 변환해서 역격자 벡터로 전개하면 이고, 슈뢰딩거 방정식은 각 마다 독립된 무한 행렬 고유값 문제(중심 방정식)가 된다.
거의 자유로운 전자 그림에서는 가 작다고 보고 섭동론을 쓴다. 그런데 브릴루앙 영역 경계, 즉 인 곳에서는 두 평면파의 자유 에너지가 같아 축퇴가 생기고, 축퇴 섭동론의 세속행렬을 풀면
갭이 열린다. 물리적 그림은 브래그 반사다. 경계에서 전진파와 후진파가 같은 세기로 섞여 정상파 두 개(사인형·코사인형)를 만드는데, 하나는 전자 밀도를 이온 코어 위에 몰고 다른 하나는 이온 사이에 몰아서 퍼텐셜 에너지가 갈린다. 그 차이가 갭이다. 파동이 결정에 부딪히는 곳에서 갭이 생긴다는 점에서 광결정의 광자 밴드갭과 완전히 같은 기구다.
5.1. 크로니히-페니 모형[편집]
1차원에서 손으로 끝까지 풀리는 장난감이 크로니히-페니 모형(1931)이다. 주기 의 델타 빗 에 대해 파동함수 접합 조건을 걸면 초월방정식 하나가 나온다.
좌변은 에 갇혀 있는데 우변은 그렇지 않다. 우변이 1을 넘거나 −1 아래로 내려가는 에너지 구간에는 실수 가 없다 — 그게 금지대다. 밴드와 갭이 교대로 나타나는 구조가 이 한 줄의 부등식에서 통째로 떨어진다. 이면 자유전자, 이면 고립 우물의 이산 준위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계산 관점에서 이 모형은 사실 전달행렬법 그 자체다. 셀 하나의 전달행렬 을 만들면 블로흐 조건은 의 고유값이 라는 것이고, (유니모듈러)이므로 위 초월방정식은 정확히 다. 면 고유값이 실수 쌍이 되어 지수적으로 자라거나 줄고, 그게 금지대의 소멸파다. 1차원 광학 다층막의 밴드갭 계산이 같은 식을 쓰는 이유다.3
6. 왜 계산이 가능해지는가[편집]
블로흐 정리는 우아한 결과이기 이전에 계산 가능성의 전제다. 정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 해밀토니안의 블록 대각화. 병진 대칭이 를 별 블록으로 쪼갠다. 서로 다른 끼리 섞이지 않으므로 각 는 완전히 독립된 작은 고유값 문제이고, 이건 당황스러울 만큼 병렬적이다. 실제 DFT 코드가 -점을 MPI 랭크에 그냥 뿌리는 이유.
- 평면파 기저의 정당성. 가 주기함수라는 사실이 곧 “평면파 유한 집합으로 전개해도 된다”는 허가증이다. 컷오프 하나로 정확도를 체계적으로 조절할 수 있고, 운동에너지는 공간에서 대각·퍼텐셜은 실공간에서 대각이라 둘 사이를 고속 푸리에 변환으로 오가는 이중공간 기법이 성립한다.
- 유사퍼텐셜이 통하는 이유. 핵 근처의 격렬한 진동을 평면파로 적으면 가 수백만 개 필요해진다. 내각 전자를 매끄러운 유효 퍼텐셜로 갈아 끼우면 그 수가 급감하는데, 이 치환이 정당한 것도 결국 원자마다 같은 주기적 교체를 하기 때문이다.
- -점 표본추출. 전자 밀도나 전체 에너지는 브릴루앙 영역 적분이고, 이를 유한 합으로 근사하는 표준이 몽크호스트-팩 격자다. 결정 점군 대칭으로 기약 쐐기만 계산하면 비용이 수십 분의 일로 준다. 수렴 거동과 스미어링은 밴드 구조 계산 참고.
- 초격자(supercell) 트릭. 결함·표면·분자처럼 주기적이지 않은 대상도 충분히 큰 세포로 인위적 주기화를 하면 정리를 계속 쓸 수 있다. 대가는 이웃 상(image) 사이의 가짜 상호작용이며, 세포 크기 수렴 시험이 논문 심사의 단골 지적사항이 된 이유다.
국소화된 상보적 기저인 바니어 함수 도 여기서 나온다. 의 위상 게이지 자유도 때문에 유일하지 않은데, 이를 퍼짐 최소화로 고정한 최대국소화 바니어 함수(마르차리-반더빌트, 1997)가 유효 모형 추출과 결정 분극 이론의 표준 도구다.
7. 이식과 파탄[편집]
정리의 전제가 “이산 병진 대칭” 하나뿐이므로, 파동방정식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이식된다.
- 광자 — 주기 유전율에서 맥스웰 방정식이 에르미트 고유값 문제가 되고 해가 꼴이 된다. 자세한 것은 광결정 문서. 다만 슈뢰딩거와 달리 고유 스케일이 없어 구조를 통째로 키우면 주파수가 그대로 비례해 내려간다.
- 포논·탄성파 — 주기 배치된 산란체에서 음향 밴드갭이 열린다. 포노닉 결정과 방진 메타구조의 원리다.
- 시간 주기계 — 공간 대신 시간이 주기적이면 같은 논증이 플로케 정리를 준다. 주기 구동계의 준에너지가 밴드와 같은 역할을 하고, 플로케 위상물질이 여기서 나왔다.4
반대로 전제가 깨지면 정리도 깨진다. 무질서한 비정질·불순물 계에는 이산 병진 대칭이 없어 가 더는 좋은 양자수가 아니고, 확장된 블로흐 파 대신 지수적으로 국소화된 상태가 나타난다(앤더슨 국소화 — 1차원에서는 아무리 약한 무질서로도 모든 상태가 국소화된다). 균일 자기장의 벡터 퍼텐셜은 주기적이지 않아 자기 병진군으로 갈아타야 하고, 유리수 플럭스 비에서만 초격자 주기가 살아나 호프스태터 나비가 나온다. 비선형 항이 있으면 중첩 자체가 깨져 그대로는 못 쓴다.
8. 관련 문서[편집]
- 밴드 구조 계산 · 밀도범함수이론
- 슈뢰딩거 방정식 · 양자역학
- 평면파 기저 · 유사퍼텐셜 · 고속 푸리에 변환
- 전달행렬법 · 고유값 문제 · 크로니히-페니 모형
- 광결정 · 포노닉 결정
- 주기경계조건 · 상태밀도
- 푸리에 변환 · 하트리-폭 방법
9. Footnotes[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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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까지 세면 밴드 하나에 개 전자가 들어간다. 그래서 단위세포당 원자가전자가 홀수면 최상위 밴드가 반만 차서 금속, 짝수면 꽉 차서 절연체가 될 “수 있다”. 어디까지나 필요조건이라 밴드가 겹치면 짝수여도 금속이 된다(반금속). 이 세는 논리 자체가 순전히 블로흐 정리에서 나온 상태 세기다. ↩
-
균일한 전기장을 걸면 로 가 등속으로 흐르다가 브릴루앙 영역 경계에서 반대편으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전자는 가속되는 대신 주기 로 진동한다 — 블로흐 진동. 보통 결정에서는 산란이 먼저 일어나 못 보지만 반도체 초격자와 광격자 속 냉원자에서는 실제로 관측된다. 전기장을 걸었더니 전자가 앞으로 안 가고 제자리에서 떤다는 게 이 정리의 가장 반직관적인 귀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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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조심할 것 하나. 층이 아주 많아지면 전달행렬 곱이 지수적으로 자라는 성분에 오염돼 수치적으로 터진다. 밴드 계산에서는 만 필요해서 티가 안 나지만, 두꺼운 다층 구조의 투과율을 뽑을 때는 산란행렬 정식화로 갈아타는 것이 안전하다. 자세한 건 전달행렬법 문서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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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순서는 오히려 거꾸로다. 플로케(1883)의 상미분방정식 정리와 힐(1877)의 달 운동 이론이 먼저였고, 블로흐(1928)가 하이젠베르크 밑에서 박사논문을 쓰며 이걸 3차원 결정에 적용한 것이다. 그래서 광결정 쪽에서는 “블로흐-플로케 정리”라고 두 이름을 붙여 부르는 관행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