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미-디랙 분포

편집 역사 토론
양자역학 계산물리 마지막 수정: 2026-08-03 04:52:17

1. 개요[편집]

페르미-디랙 분포(Fermi-Dirac distribution)는 파울리 배타원리를 따르는 입자(페르미온)가 열평형에서 에너지 EE 인 단일 양자 상태를 차지할 평균 확률을 주는 분포다.

f(E)=1e(Eμ)/kBT+1f(E) = \frac{1}{e^{(E-\mu)/k_B T} + 1}

여기서 μ\mu 는 화학 퍼텐셜, kBk_B 는 볼츠만 상수다. 맥스웰-볼츠만 분포와 겉모습은 비슷한데 분모에 +1 이 붙어 있고, 이 한 글자가 20세기 고체물리를 통째로 만들었다. 이 항 때문에 ff 는 절대 1을 넘지 못한다 — 한 상태에 전자 하나, 그 이상은 못 넣는다는 배타원리가 확률의 상한으로 번역된 것이다.1

유도는 대정준 앙상블에서 세 줄이면 끝난다. 단일 상태의 점유수는 0 또는 1뿐이므로 그 상태의 대분배함수는 Ξ=1+e(Eμ)/kBT\Xi = 1 + e^{-(E-\mu)/k_BT} 이고, 평균 점유수를 계산하면 위 식이 바로 나온다. 점유수가 0, 1, 2, … 무한대까지 가능한 보손이었다면 등비급수가 되어 분모에 1-1 이 붙는 보스-아인슈타인 분포가 나온다. 통계의 갈림길이 딱 여기다.

2. 페르미 준위, 페르미 에너지, 화학 퍼텐셜[편집]

셋을 섞어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짚고 간다.

  • 화학 퍼텐셜 μ(T)\mu(T): 온도에 의존하는 열역학량. 입자를 하나 더 넣을 때의 자유에너지 변화. 위 식에 들어가는 게 이것이다. E=μE = \mu 에서 ff온도와 무관하게 정확히 1/2이다.
  • 페르미 에너지 EFE_F: T=0T = 0 에서 채워진 가장 높은 준위의 에너지. 온도에 의존하지 않는 물질 고유의 양.
  • 페르미 준위: 실무에서는 대개 μ(T)\mu(T) 를 가리키지만, 문헌마다 혼용된다.

T0T \to 0 극한에서 ffμ=EF\mu = E_F 를 경계로 하는 계단 함수가 된다. 유한 온도에서는 계단 모서리가 kBTk_BT 규모의 폭으로 뭉개지는데, ff 가 0.9에서 0.1로 떨어지는 데 걸리는 폭이 대략 4.4kBT4.4\,k_BT 다. 상온에서 kBT25.9k_BT \approx 25.9 meV이니, 페르미 에너지가 수 eV인 금속에서는 전체의 겨우 1% 안팎만 이 흐릿한 띠에 들어간다. 자유전자 기체에서 μ\mu 의 온도 의존성은

μ(T)EF[1π212(kBTEF)2]\mu(T) \simeq E_F\left[1 - \frac{\pi^2}{12}\left(\frac{k_B T}{E_F}\right)^2\right]

로 아주 완만하다. 그래서 금속을 다룰 때 μEF\mu \approx E_F 로 두는 게 보통 허용된다. 반도체에서는 절대 안 된다 — 밴드갭 안에 놓인 μ\mu 는 온도와 도핑에 따라 요란하게 움직인다.

3. 축퇴와 금속 전자 비열[편집]

TFEF/kBT_F \equiv E_F/k_B페르미 온도라 부른다. 전형적인 금속에서 TFT_F 는 수만 K 수준이다. 즉 상온은 T/TF102T/T_F \sim 10^{-2} 로, 전자 기체 입장에서는 거의 절대영도다. 이 상태를 축퇴(degenerate)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고전 통계역학의 유명한 참사가 나온다. 등분배 정리를 곧이곧대로 적용하면 전도 전자 하나당 32kB\frac{3}{2}k_B 의 비열이 나와야 하고, 그러면 금속의 비열이 부도체보다 압도적으로 커야 한다. 실측은 그렇지 않다. 전자 비열은 예측값의 100분의 1 수준이고, 게다가 온도에 비례한다.

답은 배타원리다. 대부분의 전자는 자기 아래위가 꽉 차 있어서 kBTk_BT 를 받아도 갈 곳이 없다. 열을 흡수할 수 있는 건 페르미 면 근처 kBT\sim k_BT 폭 안에 있는 소수뿐이다. 이 논리를 정량화한 것이 소머펠트 전개로, 매끄러운 함수 H(E)H(E) 에 대해

H(E)f(E)dE=μH(E)dE+π26(kBT)2H(μ)+O(T4)\int_{-\infty}^{\infty} H(E) f(E)\, dE = \int_{-\infty}^{\mu} H(E)\, dE + \frac{\pi^2}{6}(k_B T)^2 H'(\mu) + O(T^4)

가 성립한다. 이를 내부 에너지에 적용하면 전자 비열은

cv=π23kB2Tg(EF)c_v = \frac{\pi^2}{3} k_B^2\, T\, g(E_F)

가 되어 TT 에 선형이며, 상태밀도 g(EF)g(E_F) 에만 의존한다. 자유전자 기체에서 g(EF)=3n/2EFg(E_F) = 3n/2E_F 를 넣으면 cv=π22nkB(T/TF)c_v = \frac{\pi^2}{2} n k_B (T/T_F) 로, 고전값에 T/TFT/T_F 라는 억제 인자가 곱해진 꼴이다. 저온에서 금속 비열을 C/T=γ+βT2C/T = \gamma + \beta T^2 로 플롯하면 절편 γ\gamma 가 전자 기여, 기울기 β\beta 가 격자(디바이 T3T^3, 포논 분산 참고) 기여로 깔끔하게 갈린다. 실험적으로 g(EF)g(E_F) 를 재는 표준 수단이 이것이다.2

4. 계산에서의 골칫거리 — 스미어링[편집]

여기부터가 시뮬레이션 하는 사람의 현실이다. 밀도범함수이론 계산에서 전자 밀도는 브릴루앙 영역(BZ) 적분으로 얻는다.

n(r)=nBZdk(2π)3f(εnk)ψnk(r)2n(\mathbf{r}) = \sum_{n} \int_{\rm BZ} \frac{d\mathbf{k}}{(2\pi)^3}\, f(\varepsilon_{n\mathbf{k}})\, |\psi_{n\mathbf{k}}(\mathbf{r})|^2

실제로는 몽코스트-팩 격자 같은 유한한 k-점 집합으로 이 적분을 대체한다. 부도체·반도체라면 아무 문제 없다 — 점유수가 모든 k에서 1 아니면 0으로 매끄러우니 k-점 몇 개만 있어도 수렴한다.

금속은 다르다. 페르미 면이 BZ 내부를 가로지르므로, T=0T=0 점유수는 페르미 면을 경계로 1에서 0으로 불연속하게 떨어진다. 불연속 함수를 유한 표본으로 적분하니 수렴이 처참해진다. k-점을 조금만 바꿔도 페르미 면 근처 밴드가 들락날락하며 전체 에너지가 요동치고, SCF 반복이 두 상태 사이를 왕복하며 수렴을 거부한다. 밴드 구조 계산을 처음 돌린 사람이 금속에서 “charge sloshing”으로 좌절하는 전형적 이유다.

처방은 점유수를 일부러 뭉개는 것스미어링(smearing)이다. 폭 σ\sigma 짜리 매끄러운 계단 함수로 갈아끼우면 피적분함수가 매끄러워지고 k-점 수렴이 극적으로 빨라진다. 종류는 이렇다.

  • 페르미-디랙 스미어링: 물리적으로 정직한 선택. σ=kBT\sigma = k_BT 로 두면 유한 온도 DFT(머민 범함수) 그 자체가 되고, 최소화 대상은 전체 에너지가 아니라 자유에너지 F=ETSF = E - TS 다.
  • 가우시안 스미어링: 델타 함수를 가우시안으로 대체. 다루기 쉽지만 σ\sigma 가 커질수록 에너지에 O(σ2)O(\sigma^2) 편향이 남는다.
  • 메토폴리-파울로(MP) 스미어링: 델타 함수를 에르미트 다항식으로 NN 차까지 전개한 것. 오차가 σ\sigma 의 고차항으로 밀려나므로 σ\sigma 를 써도 T0T\to 0 결과에 가깝다. 대가로 점유수가 [0,1][0,1] 을 벗어나 음수가 되거나 1을 넘을 수 있다.
  • 마즈나리-반더빌트 콜드 스미어링: 엔트로피 항이 거의 0이 되도록 설계해 자유에너지와 전체 에너지의 차이를 최소화한다. σ\sigma 를 물리적 온도로 해석할 필요가 없고, 구조 최적화에서 무난하다.
  • 테트라헤드론 방법(블뢰흘 보정): 스미어링이 아니라 k-공간을 사면체로 쪼개 선형 보간으로 적분하는 방식. 상태밀도와 전체 에너지 정확도가 좋지만, 코드에 따라 힘·응력 계산에는 권장되지 않는다.

실무 감각으로는, 전체 에너지·구조 최적화에는 MP 또는 콜드 스미어링에 작은 σ\sigma, 정밀한 DOS에는 테트라헤드론, 물리적으로 뜨거운 계에는 페르미-디랙이 대략의 국룰이다. 어느 쪽이든 σ\sigma 는 수렴 파라미터이므로 k-점 수와 함께 수렴 시험을 해야 하고, 논문에 값을 안 적으면 재현이 안 된다. VASP, Quantum ESPRESSO 같은 평면파 기저 코드가 죄다 이 옵션을 첫 페이지에 두는 데는 이유가 있다.3

5. 반도체 — 볼츠만 근사와 그것이 깨질 때[편집]

EμkBTE - \mu \gg k_BT 이면 분모의 지수항이 압도적이라 +1+1 을 무시할 수 있다.

f(E)e(Eμ)/kBTf(E) \approx e^{-(E-\mu)/k_B T}

맥스웰-볼츠만 분포로 되돌아간다. 통상 Ecμ3kBTE_c - \mu \gtrsim 3k_BT 를 기준으로 삼는다. 비축퇴 반도체에서는 페르미 준위가 밴드갭 한가운데 근처에 있으므로 이 조건이 잘 맞고, 그 덕에 캐리어 농도가 n=Ncexp[(Ecμ)/kBT]n = N_c \exp[-(E_c-\mu)/k_BT] 라는 예쁜 지수 꼴이 된다. 질량작용의 법칙 np=ni2np = n_i^2 도 이 근사 위에 서 있다.

문제는 축퇴 도핑이다. 도핑을 세게 넣어 μ\mu 가 전도대 안으로 들어가버리면 EcμE_c - \mu 가 음수가 되고, 볼츠만 근사는 캐리어 농도를 크게 과대평가한다. 이때는 진짜 페르미-디랙 적분 F1/2F_{1/2} 을 써야 한다. MOSFET 소스/드레인, 콘택 영역, 터널 접합, 축퇴 다결정 실리콘 게이트가 전부 이 영역이다.

반도체 소자 시뮬레이션의 주력인 드리프트-확산 모형은 이 근사를 두 군데에서 물고 있다. 첫째, 캐리어 농도-페르미 준위 관계. 둘째, 아인슈타인 관계 D/μmob=kBT/qD/\mu_{\rm mob} = k_BT/q 인데 이 관계 자체가 볼츠만 통계에서만 성립한다. 축퇴 영역에서는 확산계수가 커지는 방향으로 일반화된 아인슈타인 관계를 써야 하며, TCAD 코드들은 조이스-딕슨 근사식 같은 것으로 F1/2F_{1/2} 의 역함수를 값싸게 평가한다. 여기에 고농도 도핑에서의 밴드갭 축소까지 겹치면, “페르미-디랙을 켜느냐 마느냐”가 문턱전압 예측을 수십 mV 단위로 흔든다.

6. 관련 문서[편집]

7. Footnotes[편집]

  1. 1926년 페르미와 디랙이 독립적으로 유도했다. 디랙이 페르미의 선행 논문을 못 보고 쓴 뒤 사과 편지를 보냈다는 일화가 있고, “페르미온”이라는 이름도 디랙이 붙였다. 이름 양보의 미덕.

  2. 금속 전자 비열 이야기는 드루데 모형이 왜 절반만 맞았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드루데는 비열은 100배 틀렸는데 전기전도도와 비데만-프란츠 비는 얼추 맞혔다. 두 개의 큰 오차가 서로 상쇄된 것으로, 물리학 역사상 가장 운 좋은 우연 중 하나로 꼽힌다.

  3. 스미어링 폭을 크게 잡으면 SCF가 기적처럼 수렴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 온도의 금속을 계산한 것이다. “수렴 안 되면 시그마를 올려라”는 조언은 절반만 맞는 말이며, 나머지 절반은 “그리고 반드시 시그마 수렴 시험을 다시 해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