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입자에게 “어느 길로 갔냐”고 묻지 마라. 전부 다 갔다.
경로 적분(path integral)은 양자역학의 전이 진폭을 두 끝점을 잇는 가능한 모든 경로에 대해 위상 인자 를 더한 것으로 표현하는 정식화다. 여기서 는 최소작용 원리에 나오는 바로 그 고전 작용이다.
디랙이 1933년 논문에서 작용과 전이 진폭의 관계를 지적했고, 파인만이 1942년 박사논문과 1948년 논문에서 이를 완전한 정식화로 밀어붙였다.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 슈뢰딩거의 파동역학과 물리적으로 동등한 제3의 정식화이며, 계산 도구로서의 실질적 가치는 두 가지다. 첫째, 고전극한이 계산 없이 보인다. 둘째, 허수시간으로 회전하면 통계역학의 분배함수와 문자 그대로 같은 식이 되어, 양자 문제를 고전 몬테카를로 방법으로 풀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오늘날 격자 QCD부터 물의 수소결합 계산까지가 전부 이 두 번째 성질 위에 서 있다.
2. 시간 슬라이싱 — 정의는 극한으로만 있다[편집]
는 “모든 경로에 대한 적분”이라는 그럴듯한 기호지만, 실제 정의는 시간을 잘라 유한 차원 적분의 극한으로 놓는 것이다. 구간을 등분해 로 두고, 각 시각의 위치 을 전부 적분한다.
이 식은 슈뢰딩거 방정식에서 곧바로 유도된다. 시간 발전 연산자 를 개로 쪼개고 사이사이에 위치 완비관계 를 끼운 뒤, 짧은 시간에 대해 로 분해(트로터 분해)하면 위 형태가 나온다. 거꾸로 한 슬라이스만큼 전파시키고 에 대해 전개하면 슈뢰딩거 방정식이 복원되므로, 두 정식화의 동등성은 계산 몇 줄로 확인된다.
여기서 정직하게 짚고 갈 것이 있다. 는 진짜 측도가 아니다. 실시간 경로적분의 피적분함수는 크기가 1인 위상 인자뿐이라 절대수렴하지 않고, 유한한 셈이 성립하는 것은 극한의 상쇄 덕분이다. 수학적으로 제대로 된 측도(위너 측도)가 존재하는 것은 아래에 나올 허수시간 쪽뿐이다. 물리학자들이 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은 답이 맞기 때문이지, 정의가 튼튼해서가 아니다.1
살아남은 경로들이 미분가능한 매끄러운 곡선이라고 상상하면 안 된다는 것도 덧붙일 만하다. 기여를 지배하는 전형적 경로는 스케일로 떨리는, 브라운 운동 궤적처럼 어디서도 미분 불가능한 물건이다. 속도라는 개념 자체가 경로적분 안에서는 위태롭다.
3. 고전극한과 정상위상[편집]
가 작용의 전형적 크기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으면 이웃 경로들의 위상이 미친 듯이 흔들려 상쇄되고, 살아남는 것은 위상이 정류인 곳, 즉 인 경로 주변뿐이다. 이것이 최소작용 원리에 대한 가장 만족스러운 대답이며, 같은 논리를 빛에 적용한 것이 페르마 원리다. 자연은 최적 경로를 고르지 않는다. 모든 경로를 가 보고 나머지가 간섭으로 지워질 뿐이다. 그 서술은 두 문서에 이미 정리돼 있으니 여기서는 계산 형태만 적는다.
정상위상 근사를 2차까지 밀면 반고전 전파인자가 나온다.
앞의 행렬식이 판 블렉-모레트 행렬식으로 고전 궤적 다발이 얼마나 모이고 퍼지는지를 재고, 는 초점(공액점)을 지날 때마다 1씩 오르는 마슬로프 지표다. 고전 궤적이 여러 개면 그 진폭들이 서로 간섭한다 — 이중슬릿이 정확히 이 문장이다. 이 근사는 자유입자와 조화진동자처럼 작용이 2차식인 경우에는 근사가 아니라 정확하다는 좋은 성질도 있다.
4. 유클리드 회전 — 양자가 통계가 되는 지점[편집]
경로적분이 계산 도구가 되는 결정적 전환은 시간을 허수축으로 돌리는 것이다. 를 넣으면
가 된다. 진동하던 위상 인자가 양수 가중치 로 바뀐다. 라그랑지언의 부호가 뒤집혀 운동에너지와 퍼텐셜의 합, 즉 에너지 꼴이 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리고 통계역학의 분배함수 는 전파인자에서 로 놓고 대각합을 취한 것과 정확히 같다. 즉
주기 의 닫힌 경로에 대한 합이다. 여기서 그 유명한 양자-고전 동형(quantum–classical isomorphism)이 나온다. 허수시간을 조각으로 자르면 하나의 양자 입자가 용수철로 고리처럼 연결된 개의 고전 입자(ring polymer)와 수학적으로 같아진다. 용수철 상수는 이고, 각 비드는 로 약해진 원래 퍼텐셜을 느낀다.
고온·무거운 입자에서는 용수철이 세서 고리가 한 점으로 오그라들고( 로 충분), 저온·가벼운 입자에서는 고리가 열적 드브로이 파장 정도로 퍼진다. 고리의 크기가 곧 양자 비국소성이라는 그림이 이 방법의 직관 전부다.2
5. 경로적분 몬테카를로와 경로적분 분자동역학[편집]
가중치가 양수인 유한 차원 적분이 되었으니, 남은 것은 그냥 표본추출이다.
PIMC(path integral Monte Carlo)는 위 고리 폴리머 배위를 마르코프 연쇄 몬테카를로로 표본추출한다. 비드 하나씩 움직이면 용수철에 묶여 자기상관이 끔찍해지므로, 실제로는 자유입자 부분을 정확히 반영해 구간 전체를 다시 그리는 이중분할(bisection) 이동을 쓴다. 에너지 추정량은 열역학 추정량과 비리얼 추정량 두 갈래가 있는데, 전자는 가 커지면 분산이 함께 커지므로 실무에서는 대개 비리얼 쪽을 쓴다.
보손계에서는 여기에 입자 교환이 더해진다. 동일 보손의 대각합은 고리를 서로 이어 붙인 치환 배위까지 포함해야 하고, 그 긴 고리(macroscopic exchange cycle)의 출현이 곧 초유동의 미시적 정체다. 세펄리 등이 액체 헬륨-4의 초유동 전이를 제일원리로 재현한 것이 이 방법의 대표적 성과이며, 치환 공간을 효율적으로 도는 웜 알고리즘이 표준 도구가 됐다.
PIMD(path integral molecular dynamics)는 같은 고리 폴리머를 MC 대신 분자동역학으로 표본추출한다. 기존 MD 코드와 힘장을 거의 그대로 재사용할 수 있어 화학·재료 쪽에서 압도적으로 널리 쓰인다. 고리의 내부 진동이 매우 빨라 적분이 힘드므로 정규모드 변환과 강한 열욕(예: PILE·GLE 계열)을 붙이는 것이 국룰이다.
여기서 얻는 것이 핵의 양자효과다. 영점에너지, 수소결합의 터널링, 그리고 H/D 치환에서 나오는 동위원소 효과 — 고전 MD로는 원리적으로 접근할 수 없고, 그렇다고 무시하면 물의 녹는점부터 효소 반응 속도까지 체계적으로 틀리는 항목들이다. 대가는 계산량이 정직하게 배라는 것이고, 그래서 고차 분해나 유효 퍼텐셜로 를 줄이는 연구가 계속된다.3
주의할 점 하나. PIMD는 정적 성질에 대해서만 정확하다. 허수시간의 “동역학”은 실제 시간 발전이 아니므로, 스펙트럼이나 반응속도 같은 실시간 상관함수를 얻으려면 고리 폴리머 MD(RPMD)나 중심선 MD(CMD) 같은 근사 처방을 얹어야 한다. 이들은 짧은 시간과 고온에서는 잘 맞지만 통제된 오차 한계가 없다는 점을 논문에서 대개 작게 적어 놓는다.
6. 장론과 격자[편집]
경로를 장(field)으로 바꾸면 같은 구조가 그대로 양자장론이 된다. 적분 변수는 각 시공간 점의 장 값이고, 유클리드 회전 후의 생성범함수는
이다. 시공간을 격자로 자르면 이건 자유도가 유한개인 다중적분이 되어, 원리적으로 몬테카를로 방법으로 잴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여기에 게이지 이론의 대칭을 격자 위에서 정확히 보존하도록 링크 변수를 도입한 것이 윌슨(1974)의 격자 게이지 이론이고, 그 위에서 쿼크 가둠과 하드론 질량이 제일원리로 계산된다. 격자 QCD의 표준 표본추출기가 해밀토니안 몬테카를로라는 사실도 이 계보에서 나온다 — HMC는 통계학이 아니라 이 문제를 풀려고 1987년 격자 진영에서 발명됐다.
유클리드 작용의 안장점은 실시간에서는 볼 수 없던 물건을 준다. 이중 우물에서 한쪽 우물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가는 유클리드 고전해가 순간자(instanton)이고, 그 작용값이 터널링 확률의 지수를 준다. 격자 간격을 줄이며 연속극한을 잡는 절차는 재규격화군의 언어 그 자체이며, 상관길이가 발산하는 임계점 근처로 가야 연속극한이 존재한다는 사정도 이징 모형 쪽 상전이 논의와 완전히 같다.
7. 부호 문제[편집]
여기까지 좋았는데,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 영역이 명확히 존재한다. 가중치 가 양수가 아니게 되는 경우다.
- 페르미온. 파동함수가 교환에 대해 반대칭이라 치환 배위마다 부호가 붙는다. 서로 다른 부호가 상쇄되면서 신호 대 잡음비가 입자 수와 역온도에 대해 지수적으로 나빠진다.
- 유한 화학퍼텐셜. 격자 QCD에서 이면 페르미온 행렬식이 복소수가 되어 확률 해석이 무너진다. 중성자별 내부의 상태방정식이 여기 발이 묶여 있다.
- 실시간. 애초에 회전하지 않은 자체가 부호 문제의 극단이다. 실시간 양자 동역학을 몬테카를로로 직접 푸는 일반적 방법이 없는 이유다.
우회로는 있지만 전부 대가가 있다. 부호를 절댓값으로 옮기고 나중에 재가중하는 방식은 유효 표본수가 부피에 지수적으로 줄어 곧 벽을 만나고, 양자 몬테카를로의 고정 노드 근사는 시행 파동함수의 마디면을 믿는 대가로 변분 상한만 준다. 복소 랑주뱅과 레프셰츠 심블처럼 적분 경로를 복소평면으로 옮기는 접근도 활발하지만 아직 만능이 아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부호 문제는 NP-난해임이 알려져 있으므로, 모든 경우를 해결하는 알고리즘을 기대하는 것은 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4 이 벽 때문에 강상관 페르미온계가 양자컴퓨터의 대표적 목표 문제로 거론되는 것이기도 하다.
8. 여담[편집]
- 파인만은 경로적분을 술집에서 들은 디랙 논문 이야기로부터 하룻밤에 재구성했다는 일화로 유명한데, 그의 박사논문 제목은 정작 “고전역학에서의 최소작용 원리”였다. 양자 이야기가 절반인 논문에 그런 제목을 단 셈이다.
- 물리학자가 를 쓰면서 “정규화 상수는 나중에 맞추자”고 말할 때,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거의 항상 비율만 재기 때문이다. 분배함수의 절대값이 필요한 자유에너지 계산에서는 그 미뤄 둔 상수가 정확히 청구서로 돌아온다.
- 경로적분을 배우고 나면 최소작용 원리의 목적론적 냄새가 사라지는 대신, “왜 하필 지수에 작용이 들어가는가”라는 새 질문이 남는다. 이건 정식화를 바꿔도 안 없어지는 종류의 질문이다.
9. 관련 문서[편집]
- 최소작용 원리 · 페르마 원리 · 라그랑주 역학 · 해밀토니안 역학
- 슈뢰딩거 방정식 · 양자역학 · 양자장론
- 몬테카를로 방법 · 마르코프 연쇄 몬테카를로 · 해밀토니안 몬테카를로
- 양자 몬테카를로 · 부호 문제
- 분자동역학 · 본-오펜하이머 근사 · 밀도범함수이론
- 격자 QCD · 게이지 이론 · 재규격화군 · 이징 모형
10. Footnotes[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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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머런이 1960년에 파인만 적분에 대응하는 유한한 완전가법 측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였다. 즉 실시간 경로적분은 “적분”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쓸 자격이 없다. 그런데도 60년 넘게 잘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물리학이 수학과 맺는 관계를 요약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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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폴리머 그림이 처음 나왔을 때 화학 쪽 반응은 “양자역학을 고전 고분자 문제로 바꿨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PIMD 코드는 MD 코드에 비드 인덱스 하나를 더 붙인 것에 가깝고, 덕분에 기존 힘장·이웃 리스트·병렬화가 통째로 재사용된다. 이론의 아름다움보다 이 재사용성이 이 방법을 퍼뜨린 진짜 이유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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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얼마로 잡을지는 대략 로 잡는다. 즉 계에서 가장 빠른 진동과 온도가 함께 결정한다. 수소가 들어간 계를 상온에서 돌린다면 32는 있어야 하고, 극저온 수소나 헬륨이면 수백까지 간다. 비용이 정직하게 배라는 점에서, 이 숫자는 논문의 결론보다 예산 회의에서 더 중요한 숫자가 되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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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yer & Wiese(2005)는 특정 격자 모형의 부호 문제를 푸는 다항시간 알고리즘이 있으면 NP-완전 문제를 풀 수 있음을 보였다. 이 결과의 실용적 함의는 “만능 해법을 찾지 말고 모형별 우회로를 찾아라”이며, 실제로 이 바닥은 그렇게 굴러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