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이론물리는 연필로, 실험물리는 장비로, 계산물리는 전기요금으로 한다.
계산물리(computational physics)는 해석적으로 풀리지 않는 물리 모형을 수치적으로 풀어 물리계의 거동을 예측·해석하는 분야로, 이론물리와 실험물리에 이은 “제3의 방법론”으로 불린다. 이론이 세운 지배 방정식을 이산화해 컴퓨터에 얹고, 그 결과를 실험과 대조해 모형과 코드를 동시에 검증하는 것이 기본 작업 흐름이다.
계산물리를 다른 전산 분야와 구분 짓는 특징은 대상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전산유체역학이나 구조해석이 특정 응용을 겨냥한 공학 도구라면, 계산물리는 고전역학·통계역학·전자기학·양자역학을 관통하는 공통 문제 — 다체 문제, 상전이, 비선형 동역학 — 를 수치적으로 다루는 방법론 자체를 연구한다. 그래서 계산물리 수업의 절반은 물리가 아니라 오차·안정성·보존량 이야기다.1
2. 무엇을 계산하는가[편집]
물리 문제를 수치화하는 방식은 대체로 아래 네 갈래로 수렴한다.
- 상미분방정식 초기값 문제 — 궤도, 진자, 회로. 룽게-쿠타법이나 베를레 적분으로 시간을 전진시킨다. 해밀토니안 역학과 라그랑주 역학의 정식화가 그대로 알고리즘 설계에 반영되는 영역.
- 편미분방정식 경계값/초기값 문제 — 파동, 확산, 전자기장. 유한차분법·유한요소법·스펙트럴 방법으로 이산화한다. FDTD로 맥스웰 방정식을 푸는 것이 대표적.
- 고차원 적분과 표본추출 — 분배함수, 경로적분, 산란 단면적. 차원이 커지면 격자 적분은 죽고 몬테카를로 방법만 살아남는다.
- 고유값 문제 — 정상상태 슈뢰딩거 방정식, 진동 모드, 밴드 구조 계산. 희소 행렬의 극단 고유쌍을 뽑는 크리로프 부분공간법이 주력이다.
응용 층위로 내려가면 분자동역학(원자 스케일 뉴턴 방정식), 밀도범함수이론(전자 구조), 플라즈마 시뮬레이션과 자기유체역학, 격자 볼츠만 방법(운동론적 유체) 같은 굵직한 갈래가 각각 하나의 하위 학문으로 자라 있다.
3. 보존량과 심플렉틱 적분[편집]
계산물리가 범용 수치해석과 갈라지는 가장 뚜렷한 지점이 이것이다. 물리계에는 에너지·운동량·각운동량 같은 보존량이 있고, 좋은 적분기는 국소 오차가 작은 것보다 보존 구조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해밀토니안계의 시간 발전은 위상공간 부피를 보존하는 심플렉틱 사상이다. 4차 룽게-쿠타는 한 스텝 오차는 작지만 이 성질을 깨뜨려서, 태양계 궤도를 100만 년 돌리면 에너지가 단조롭게 흘러내린다. 반면 2차밖에 안 되는 벨로시티-베를레는 참 해밀토니안에 가까운 섀도 해밀토니안을 정확히 보존하므로, 에너지가 진동할 뿐 표류하지 않는다.2 그래서 분자동역학과 장기 천체역학은 예외 없이 심플렉틱 적분기를 쓴다.
시간 되짚기 대칭(time-reversibility)도 같은 이유로 중시된다. 물리 법칙이 가진 대칭을 이산화가 파괴하면, 그 대가는 언제나 긴 시간 뒤에 청구된다.
4. 확률과 창발[편집]
계산물리의 다른 축은 결정론적 적분이 아니라 확률이다. 통계역학에서 관측량은 앙상블 평균
으로 주어지는데, 이징 스핀이 100개만 되어도 상태의 개수가 이라 직접 합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메트로폴리스 알고리즘은 볼츠만 분포를 정상분포로 갖는 마르코프 연쇄를 만들어 중요한 상태만 골라 표본추출한다. 이징 모형의 상전이, 임계 지수, 유한 크기 스케일링은 모두 이 위에서 계산된다. 저온에서 연쇄가 갇히는 문제는 병렬 템퍼링으로, 페르미온 부호 문제는 양자 몬테카를로의 오래된 숙제로 남아 있다.
세포자동자는 이 계열의 가장 극단적인 단순화다. 상태도 시간도 공간도 전부 이산이지만, 격자 기체 자동자(HPP·FHP)는 적절한 대칭을 갖춘 규칙에서 거시적으로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이 유도된다는 것이 알려져 있고, 이것이 격자 볼츠만 방법의 직계 조상이다.3
5. 계산 자원과 정밀도[편집]
계산물리는 전통적으로 슈퍼컴퓨터의 최대 고객이다. 격자 QCD, 우주 대구조 N체 시뮬레이션, 기후 모형은 각각 국가 단위 예산으로 굴러간다. 그래서 병렬 컴퓨팅의 도메인 분할과 통신 은닉, GPU 컴퓨팅의 메모리 대역폭 관리가 물리 지식만큼이나 실무 역량으로 취급된다.
동시에 부동소수점 연산의 한계를 가장 아프게 겪는 분야이기도 하다. 로렌츠가 반올림된 초기값 세 자리 차이로 완전히 다른 예보를 얻은 것이 나비 효과의 기원이고, 카오스계에서는 리아푸노프 시간을 넘어선 궤적을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계산물리는 개별 궤적 대신 통계량·불변측도·리우빌 정리가 보장하는 위상공간 밀도로 답을 말하는 습관이 있다.
최근에는 물리 정보 신경망처럼 지배 방정식을 손실함수에 박아 넣는 접근이 유행하지만, 기존 솔버를 대체했다기보다 역문제·자료동화 쪽에서 자리를 잡는 중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어떤 방법을 쓰든 결론은 같다 — 검증 및 확인 없는 숫자는 그림일 뿐이다.4
6. 관련 문서[편집]
- 전산과학 · 수치해석
- 분자동역학 · 몬테카를로 방법 · 격자 볼츠만 방법
- 해밀토니안 역학 · 라그랑주 역학 · 베를레 적분
- 유한차분법 · 스펙트럴 방법 · 편미분방정식
- 양자역학 · 전자기학 · 통계
- 병렬 컴퓨팅 · GPU 컴퓨팅
- 물리 정보 신경망 · 검증 및 확인
7. Footnotes[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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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물리 강의 첫 시간에 조화진동자를 오일러 전진법으로 풀게 시키는 것은 일종의 통과의례다. 에너지가 지수적으로 불어나 진폭이 하늘로 치솟는 걸 직접 보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시키지 않아도 적분기를 의심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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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벨로시티-베를레가 보존하는 것은 참 에너지가 아니라 크기의 섀도 해밀토니안이다. 그래서 에너지가 일정 진폭으로 진동하되 평균은 표류하지 않는다. 논문 그림에서 에너지 곡선이 톱니처럼 떨리는데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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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HP 모형이 육각 격자를 쓴 이유는 정사각 격자로는 유체의 등방성이 확보되지 않아 응력 텐서에 격자 방향이 남기 때문이다. 격자 모양 때문에 물리가 틀어지는 대표적 사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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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그림은 대체로 아름답다. 계산물리 논문 표지에 실리는 이미지가 예쁜 것과 그 계산이 맞는 것 사이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