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 쿠퍼 쌍 Cooper Pair | |
|---|---|
| 제안 | 리언 쿠퍼 (1956) — 페르미 바다 위 두 전자의 속박 |
| 핵심 주장 | 인력이 아무리 약해도 속박상태가 반드시 생긴다 |
| 쿠퍼 문제 결합에너지 | $2\hbar\omega_D\,e^{-2/N(0)V}$ |
| BCS 갭 | $\Delta(0)=2\hbar\omega_D\,e^{-1/N(0)V}$ |
| 보편비 | $2\Delta(0)/k_BT_c = 3.53$ (약결합 극한) |
| 매개 | 포논 — 지연(retardation)이 쿨롱 반발을 피하게 해 준다 |
| 크기 | 결맞음 길이 $\xi_0=\hbar v_F/\pi\Delta$ — 격자상수의 $10^3\!-\!10^4$ 배 |
페르미 바다는 이미 꽉 차 있고, 전자끼리는 서로 밀어낸다. 그런데도 두 전자가 짝을 짓는다. 그것도 “인력이 충분히 세면”이 아니라 “아무리 약해도”.
쿠퍼 쌍(Cooper pair)은 페르미 바다 표면 근처의 두 전자가 임의로 약한 인력만 있어도 형성하는 속박상태이며, 초전도의 미시적 기원이다. 1956년 리언 쿠퍼가 제시한 이 결과가 이듬해 BCS 이론으로 이어졌고, 발견(1911)에서 이론(1957)까지 46년 걸린 초전도 문제가 그렇게 정리됐다.
이 문서가 붙들고 갈 질문은 하나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가. 답은 뒤에 나올 지수함수 안에 있다. 이 함수는 에서 모든 차수의 도함수가 0이라 섭동전개로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20년 넘게 세계 최고의 이론가들이 결합상수의 급수를 전개하며 초전도를 찾았는데, 애초에 급수에 없는 답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마이스너 효과 문서가 초전도의 열역학적 정체를 다룬다면, 이 문서는 그 상태를 만드는 미시적 기작을 다룬다.
2. 쿠퍼 문제 — 왜 “아무리 약해도”인가[편집]
쿠퍼가 푼 문제는 놀랄 만큼 소박하다. 채워진 페르미 바다는 얼어 있다고 보고, 그 위에 전자 두 개만 얹는다. 두 전자의 총 운동량을 0으로 잡고(이것이 최적임은 나중에 확인된다) 시험 파동함수를
로 두고, 페르미 준위 위 폭의 껍질 안에서만 작동하는 일정 인력 를 가정한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정리하면 자기일관 조건
가 나온다( 은 스핀당 페르미 준위 상태밀도, 는 페르미 준위 기준 에너지). 적분이 로그다. 이것이 전부다.
, 즉 속박상태다. 그리고 가 얼마나 작든 로그가 발산해 주므로 해가 존재한다. 3차원 자유공간에서 두 입자가 속박되려면 퍼텐셜이 일정 문턱을 넘어야 하는 것과 정반대인데, 차이를 만든 것은 페르미 바다 하나다. 바다가 있어서 상태밀도가 페르미 준위에서 유한한 상수처럼 굴고, 사용할 수 있는 위상공간이 껍질로 제한되며, 그 결과 문제가 사실상 1차원처럼 행동한다. 1차원에서는 아무리 얕은 우물도 속박상태를 갖는다.
여기서 결론이 하나 더 따라 나온다. 페르미 바다는 이 인력 앞에서 불안정하다. 두 전자가 짝지어 에너지를 낮출 수 있으면 그 다음 두 전자도, 그 다음도 그렇게 한다. 쿠퍼 문제는 “짝이 생긴다”까지만 말하고, 계 전체가 어떤 상태로 자리 잡는지는 못 말한다. 그 답이 BCS의 변분 파동함수다.
3. 섭동전개가 못 잡는 이유[편집]
를 의 함수로 보자. 에서 모든 계수가 0인 채로 함수 자체는 0이 아니다. 본질적 특이점이며, 이런 양은 결합상수의 유한 차수 파인만 도형을 아무리 더해도 나오지 않는다. 나오게 하려면 특정 부류의 도형(사다리 도형)을 모든 차수에 걸쳐 무한히 합해야 하고, 그 무한합의 기하급수가 극점을 만들면서 비로소 지수가 튀어나온다.
이 구조는 물리학의 여러 곳에 재등장한다. QCD의 차원 전이(dimensional transmutation)에서 이 나오는 방식이 똑같고, 재규격화군의 언어로는 인력이 페르미면 근처에서 관련 있는(relevant) 섭동이라 아무리 작게 시작해도 저에너지로 흐르면서 커진다고 말한다. “작은 결합상수 = 작은 효과”라는 직관이 무너지는 대표 사례이며,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46년의 절반을 설명한다.1
4. 포논 매개 인력과 지연 효과[편집]
남은 문제는 “전자끼리 어떻게 끌어당기는가”다. 쿨롱 반발은 명백히 존재하고, 금속의 차폐를 감안해도 인력이 되지는 않는다. 답은 이온 격자를 매개로 한 간접 인력이다.
전자가 지나가면 무거운 양이온들이 그쪽으로 조금 끌려온다. 그런데 이온은 느리다 — 격자 응답의 특성 진동수 는 전자의 특성 에너지 보다 두세 자릿수 작다. 그래서 첫 전자가 이미 멀리 지나간 뒤에야 양전하 과잉이 최대가 되고, 그때 도착한 두 번째 전자가 그 여운에 끌린다. 이 지연(retardation)이 결정적이다. 두 전자가 같은 시간·같은 장소에 있을 필요가 없으므로 쿨롱 반발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다.
지연이 만드는 두 전자 사이의 거리는 대략 규모인데, 전형적인 금속 값을 넣으면 수십~수백 nm 가 나온다. 격자상수가 0.1 nm 대인 것과 비교하면 짝의 파트너는 수천 개의 다른 전자 너머에 있다.
에너지 축에서 보면 이 인력은 인 좁은 껍질에서만 작동한다. 앞 절에서 적분 상한을 로 잡은 것이 이 사실의 반영이고, 따라서 가 포논 진동수에 매여 있어야 한다. 동위원소 효과가 그 직접 증거다. 같은 원소의 서로 다른 동위원소로 만든 시료에서
가 관측됐고, 이는 와 정확히 일치한다. 1950년에 실험이 이 힌트를 먼저 던졌고, 6년 뒤 이론이 따라잡았다. 다만 가 모든 초전도체에서 1/2인 것은 아니다 — 쿨롱 유사퍼텐셜의 기여와 강결합 보정이 들어가면 값이 달라지고, 어떤 계에서는 거의 0이거나 음수로도 측정된다. 그래서 “동위원소 효과가 없다 ⇒ 포논이 아니다”라는 추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5. BCS 갭 방정식[편집]
BCS는 짝 하나가 아니라 계 전체를 다룬다. 변분 상태
는 입자 수가 확정되지 않은 결맞은 중첩이며, 이 「위상이 정해진 대신 개수가 흐려진 상태」가 초전도 위상 결맞음의 정체다. 에너지를 최소화하면 자기일관 갭 방정식이 나온다.
은 언제나 해다(정상 상태). 초전도 해는 양변을 로 나눈 자기일관 조건에서 나오며, 에서 이므로 적분이 로 초등적이 되어 약결합 극한에서
를 준다. 쿠퍼 문제의 지수와 분모의 2가 다르다는 점에 주의. 쿠퍼 문제는 바다 위 두 전자만 짝짓지만 BCS는 페르미면 양쪽 모두를 쓰기 때문에 위상공간이 두 배이고, 그 차이가 지수에 그대로 나타난다. 문헌에서 이 둘을 섞어 쓰는 실수가 은근히 흔하다.
이 되는 온도를 찾으면 이고, 두 식에서 지수가 통째로 소거된다.
미지의 와 가 사라진 매개변수 없는 예측이라는 점이 이 식의 힘이다. Al, Sn, In 같은 약결합 초전도체에서 실측이 3.5 근처로 잘 맞고, Pb·Hg 처럼 전자-포논 결합이 강한 물질에서는 4를 넘는다. 이 편차는 이론의 실패가 아니라 약결합 근사의 실패이며, 지연을 제대로 다루는 엘리아시베르크 이론이 그 자리를 메운다.
수치적으로 갭 방정식은 1차원 비선형 스칼라 방정식의 부동점 문제다. 를 넣어 우변을 계산하고 다시 대입하는 단순 반복만으로도 수렴하지만, 근처에서 가 로 죽으면서 수렴이 느려진다. 그 근처에서는 을 변수로 두거나 뉴턴법으로 갈아타는 것이 정석이다. 위에서 본 자명해도 함정이다 — 초기값을 0에서 시작하면 반복이 영원히 0에 머문다.
6. 짝의 크기 — 왜 BEC가 아닌가[편집]
쿠퍼 쌍의 공간적 크기는 결맞음 길이로 잰다.
가 meV 급이고 가 m/s 급이므로 알루미늄에서는 마이크로미터 규모, 니오븀처럼 가 높은 물질에서도 수십 nm가 나온다. 격자상수의 배다.
이 숫자의 의미가 중요하다. 하나의 쿠퍼 쌍이 차지하는 부피 안에 다른 쌍이 수백만 개 들어 있다. 그러니 쿠퍼 쌍을 “두 전자가 손잡고 다니는 작은 보손 분자”로 그리는 흔한 삽화는 오해를 부른다. 짝들은 서로 심하게 겹쳐 있고, 그 겹침 자체가 모든 짝이 같은 위상을 공유하도록 강제한다. 짝 하나만 떼어내 「그 짝의 파동함수」를 말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
동시에 이것이 왜 초전도가 보스-아인슈타인 응축과 같지 않은지도 설명한다. BEC는 이미 존재하는 보손이 낮은 온도에서 바닥상태로 모이는 것이고, BCS는 짝의 형성과 위상 결맞음이 같은 온도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짝 크기가 입자 간 거리보다 훨씬 크면 BCS, 훨씬 작으면 BEC다.
7. BCS-BEC 크로스오버[편집]
두 극한이 별개의 상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이 분야의 중요한 통찰이다. 인력을 키우면 짝이 작아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짝이 먼저 만들어진 뒤 나중에 응축한다. 두 극한 사이에 상전이는 없고 매끄러운 크로스오버만 있다.
문제는 그 중간 영역이 작은 매개변수가 없는 강상관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역이 광격자 이웃 동네인 냉원자 실험에서 실물로 구현됐다. 페슈바흐 공명으로 산란길이를 무한대로 보내면 산란길이가 문제에서 사라져 **모든 물리량이 페르미 에너지 하나로만 표현되는 「단일성 페르미 기체」**가 된다. 바닥상태 에너지가 이상 페르미 기체의 일정 배수라는 그 비례상수(버치(Bertsch) 매개변수)가 실험과 양자 몬테카를로 양쪽에서 0.37 근처로 수렴한 것이 이 분야의 대표적 성과다. 미시 물리를 통제 가능한 원자 기체에서 재는 것이, 통제 불가능한 고체를 계속 두드리는 것보다 빨랐다.
8. 남은 문제 — d-파와 고온초전도[편집]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에서 짝짓기의 대칭성은 s-파가 아니라 다. 갭이 운동량에 의존하고
의 형태를 가져 브릴루앙 영역 대각선 방향에서 정확히 0이 되는 마디를 갖는다. 마디의 존재는 저온 비열·침투깊이가 지수가 아니라 거듭제곱으로 거동하게 만들고, 부호가 뒤집힌다는 사실은 위상 민감 실험(접합 고리·삼결정 실험)에서 자속 반양자로 직접 확인됐다. 여기까지는 확정된 사실이다.
확정되지 않은 것은 그 아래다.
- 무엇이 짝을 붙이는가. 포논만으로는 관측된 를 설명하기 어렵고, 반강자성 스핀 요동이 유력한 후보지만 합의된 정량 이론은 없다.
- 의사갭. 위에서도 갭이 열려 있는 영역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위상 결맞음 없이 짝만 먼저 생긴 상태인지 아니면 경쟁하는 별개의 질서인지가 여전히 논쟁 중이다.
- 계산이 막혀 있다. 최소 모형인 2차원 허바드 모형의 도핑 영역이 부호 문제 때문에 양자 몬테카를로로 안 풀린다. DMRG·텐서 네트워크·동적 평균장 등 여러 방법이 서로 다른 답을 주다가 최근에야 몇몇 영역에서 수렴하기 시작했다.
포논 계열에서도 계산이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밀도범함수이론으로 포논과 전자-포논 결합을 구해 엘리아시베르크 방정식에 넣으면 통상 초전도체의 를 실제로 예측할 수 있고, 고압 수소화물의 높은 가 이 방식으로 실험보다 먼저 예측된 사례도 있다. 비균질 계에서는 보골류보프-드젠 방정식을 격자 위에서 직접 대각화해 소용돌이 심 근처의 국소 갭을 계산한다.
9. 여담[편집]
- “아무리 약한 인력이라도”라는 표현은 정확히는 깔끔한 페르미면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무질서가 심하거나 페르미면이 없어지면 논리가 무너진다. 그래서 이 결과를 「양자역학의 마법」으로 소개하는 대중서를 보면 물리학자들이 조금 불편해한다. 마법이 아니라 상태밀도 상수 + 로그 발산이다.
- 쿠퍼 쌍은 페르미온 두 개로 이루어졌으니 보손처럼 굴 것 같지만, 엄밀히는 정확한 보손이 아니다. 짝의 생성 연산자들이 정확한 보손 교환관계를 만족하지 않으며, 그 어긋남이 파울리 배타의 흔적이다. “쿠퍼 쌍은 보손이다”는 90% 맞고 10% 틀린 문장이며, 문제가 되는 상황이 정확히 앞에서 본 크로스오버 영역이다.
- 자속 양자가 라는 실험 사실은 전하 운반자가 라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다. 이론이 예측한 뒤 확인된 것이 아니라, 이 값이 나오면서 짝짓기 그림에 쐐기가 박혔다. 이 는 초전도 큐비트의 전하 자유도가 쌍 단위로 세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 BCS 논문 이전에도 정답 근처를 스쳐 간 시도가 여럿 있었다. 특히 슈리퍼가 변분 파동함수를 뉴욕행 지하철에서 떠올렸다는 일화는 이 분야의 국룰 에피소드인데, 정작 본인들은 그 상태의 입자 수가 안 정해진다는 점 때문에 한동안 자신들이 틀렸다고 의심했다.2
- 오늘날 쿠퍼 쌍은 이론 개념을 넘어 부품이다. 조지프슨 접합, 초전도 양자간섭계, 초전도 큐비트가 전부 「쌍의 위상」을 제어 변수로 쓴다. 1956년의 계산 한 장이 60년 뒤 양자컴퓨터 배선도에 들어와 있다.3
10. 관련 문서[편집]
- 마이스너 효과 · 초전도 큐비트 · 상전이 · 상태밀도
-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 광격자 · 레이저 냉각
- 재규격화군 · 상관함수 · 변분법 · 블로흐 정리
- 밀도범함수이론 · 양자 몬테카를로 · DMRG · 텐서 네트워크
- 초전도 · 고온초전도 · 전자-포논 상호작용 · 페슈바흐 공명
11. Footnotes[편집]
-
파인만도 초전도에 도전했다가 실패했고, 나중에 “내가 놓친 것은 답이 급수 밖에 있다는 사실”이라는 취지로 회고했다. 급수 전개는 물리학자의 기본기인데, 기본기만 믿으면 못 보는 것이 있다는 교훈이 이 사례만큼 선명한 곳도 드물다. ↩
-
입자 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를 쓰는 것은 큰 계에서 상대 요동이 로 죽으므로 정당하다. 대정준 앙상블을 쓰면서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 것과 정확히 같은 논리인데, 파동함수에 쓰면 갑자기 이상해 보인다. ↩
-
참고로 「쿠퍼 쌍 상자」라는 이름의 소자가 실제로 있다. 쌍 하나 단위로 전하를 세는 초전도 섬이며, 지금 널리 쓰이는 트랜스몬 큐비트의 직계 조상이다. 개념에서 부품까지 이름이 그대로 살아남은 드문 사례다. ↩